2015년 3월 28일 토요일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란 무엇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엉덩국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라는 만화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링크) 이 만화를 접한 적은 없더라도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만화에서 주인공인 '존슨'은 자신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깨달은 상태로 등장한다. (이 글의 모티브는 RigVeda Wiki에서 얻었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란 무엇인가?

에이븐(AVEN; Asexuality Visibility & Education Network)에서는 성적 지향을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을 느끼는 대상'에 따라 구분한다. 에이븐이 아닌 곳에서도 어떤 사람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지가 성적 지향을 구체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성적 지향은 킨제이(Alfred Kinsey, 흔히 알려져 있는 킨제이 보고서를 쓴 저자이다.)가 연구에서 피험자를 분류할 때 시작된 개념이라는 견해가 있다. (참고, 특별히 37면)

성적 지향은 어떤 매력을 꾸준히 느끼는 경우에 결정되는데 이때 영향을 주는 매력에는 성적 매력, 정서적 매력(emotional attraction), 로맨틱한 매력(romantic attraction; 필자는 이것을 느끼는 것을 연애 감정을 느낀다고 주로 표현한다.) 등이 포함된다. (참고)


성적 지향의 종류

다음은 전통적인 성적 지향이다. (참고)

이성애(heterosexuality) : 이성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동성애(homosexuality) :동성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양성애(bisexuality) :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다음은 새로이 발견된 성적 지향이다.
범성애(pansexuality) : 성별과 무관하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이 경우는 성 이분법을 탈피한 성적 지향으로도 분류된다.)
무성애(asexuality) :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경우

다음 성적 지향은 성 이분법에서 탈피했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여성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이성, 동성만으로 성별을 구분하지는 않았다.)
남성애(androsexuality) : 남성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여성애(gynosexuality) :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안드로진성애(androgynosexuality) : 안드로진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 이 성적 지향은 AVEN wiki에서는 유효하게 다루나 실제 유효한 것인지 필자가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근(近)비성애(근무성애; gray-asexual) 용어 제안

필자는 아주 확실하게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이다. 따라서 이 성적 지향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Gray-asexuality

제시된 단어는 비성애자(무성애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다. 이는 한정된 조건(특정 인물, 특정 상황 등)에서만 느끼는 성애(sexuality)를 의미하는데 현재 인터넷에서는 적당한 번역이 없어 한국어로는 주로 "회색 무성애" 내지는 "그레이에이"(gray-a; gray-asexual 또는 gray-asexuality의 줄임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을 어떤 의미로 표현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일단 다음 그림을 보자.


제시된 그림은 비성애기(무성애기(旗); Asexuality Flag)이다. 가장 위의 검정색은 비성애(무성애)를, 회색은 반(半)성애(demisexuality)와 근(近)비성애(근무성애)를, 흰색은 유성애를, 보라색은 비성애(무성애) 집단(community)을 상징한다. (출처) 여기서 주목할 점은 흑색과 백색이 각각 비성애(무성애)와 유성애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경우에 대해 흑백 논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듯 성적 지향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거나,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첫 번째 경우는 반(半)성애였다. 또 나중 경우는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근비성애(근무성애)였다. 그들의 주장(필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므로 주장이라고 표현하였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겠다. 그들은 각자 사용할 단어를 찾았는데 그것은 먼저 언급된 demisexuality와 gray-asexuality(grey-asexuality)였다.

gray-asexual들이 왜 하필이면 asexuality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생각해보면 뻔하다. (아직 정확한 의도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후 글이 수정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들은 비성애자(무성애자)가 자신들과 더욱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회색임을 특정한 것은 검정색(비성애, 무성애)와 같지 않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 좋겠으나 필자는 검정색이 비성애(무성애)를 상징하는 색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그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성애(무성애)와 비슷하면서도 다름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비슷하다는 표현 그 자체였다. 그래서 비슷하다는 의미를 갖는 근(近) 자를 앞에 붙여보았다.

2015년 3월 14일 토요일

비성애(asexuality)에 대한 성경의 관점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진 사람의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의외로 꽤 많을 것이고, 또 의외로 꽤 적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20% 이상의 한국인이 종교를 가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본 글에서는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인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의 경전인 성경을 통해 비성애(무성애; asexuality)를 종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

긍정적인 관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은 비성애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사실 이것 말고 딱히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근거가 필요하므로 성경 몇 구절을 들도록 하겠다. (본 글에서는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을 인용하고 인용 위치는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성경의 것을 병기한다.)

첫번째 관점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 19, 10-12; 마 19:10-12)[1][2]
어느날 "바리사이"(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이유만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 답으로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둘을 가를 수 없다고 답하고 그 후 제자들의 반응이 위 구절이다. 많은 비성애자들이 위 구절을 비성애에 대한 옹호 발언이라고 여긴다. 위 구절에서의 "고자"와 비성애는 꽤나 다르지만 "고자"가 '욕정'을 배제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통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구절 참고)

두번째 관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 혼자 사는 이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1코린 7, 7-8; 고전 7:7-8)[1][2]
가톨릭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개신교에서는 독신의 은사라는 것을 아주 큰 은사로 생각한다.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이 바로 제시된 구절이다. 위 구절을 썼다고 알려진 사람은 사도 바오로(바울)이다. (1코린 1, 1; 고전 1:1) 실제로 바오로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 구절의 앞부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결혼을 권한다. 그 이유는 "불륜"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1코린 7, 2; 고전 7:2) 여기서 말하는 불륜은 부부가 아닌 사람들끼리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또 상호 간에 특별한 경우(신앙에 전념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관계를 거부하지 말라고 권한다. (1코린 7, 5; 고전 7:5) 하지만 위 구절에서는 다르다. 독신인 사람들에게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권한다. 대신 "욕정"에 불타고 있다면 혼인하라고 권한다. (1코린 7, 9; 고전 7:9) 이유는 위에서 기술한대로 "불륜"을 예방하기 위함일 것이다.

위 구절이 시사하는 바는 결국 성경에서 독신을 '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븐(AVEN; Asexuality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같은 비성애자 커뮤니티에서 종교(특히 기독교)적 가치관을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는 비성애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종교를 이유로 어떠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지 이전에 성경을 읽지 않은 결과 일어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음 구절은 한 술 더 뜬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약혼녀에게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열정까지 넘쳐 혼인해야 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 두 사람은 혼인하십시오. 그러나 마음속으로 뜻을 단단히 굳히고 어떠한 강요도 없이 자기의 의지를 제어할 힘이 있어서 약혼녀를 그대로 두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였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약혼녀와 혼인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혼인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1코린 7, 36-38; 고전 7:36-38)[1][2]
사실 36절의 경우 ("어떤 사람이"부터 "혼인하십시오"까지) 지금 필자가 기술하려는 내용을 기준으로 고려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 절을 포함한 것은 비성애나 성애(유성애; allosexuality)가 (특히 성애가)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담으로 빠져서 살짝 아쉽지만) 간혹 성애자(유성애자; allosexual)나 비성애자 중에 성애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위해 첨부하였다.

부정적인 관점과 그에 대한 반론

다음 내용은 철저히 비성애자의 입장에서 쓰여 내용이 빈약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부정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

첫번째 관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 27-28; 창 1:27-28)[1][2]
사람이 자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성 간 성관계이다. 또 비성애자에게서 실제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태도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성관계를 혐오(sex-repulsed; 에이븐에서 실제로 유효한 표현이다.)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죄"라 표현한다.

비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녀를 얻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임 부부는 자녀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왜 "죄"를 지었느냐고 하지 않는다. 고의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성애자도 마찬가지이다. 비성애자는 비성애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사랑과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은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3]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창세 2, 20; 창 2:20)[1][2]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 24; 창 2:24)[1][2]
위 구절들은 이성애(heterosexuality)가 아닌 경우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을 잘 보여 준다. 결국 사람은 신의 섭리에 따라 남녀가 결혼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구절들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이는 "협력자"란 표현 때문이 아니다. 이 구절들의 앞에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신의 관점에서 썩 좋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동물들은 혼자만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내용에서 신은 사람이 사회를 이루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예수는 신이다. 그 사실은 삼위일체 사상(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는 셋이면서도 하나라는 사상으로 여기서 성자는 예수를 의미한다.)에서 잘 드러난다. 제일 위로 돌아가 긍정적인 관점의 첫번째 관점에서 인용된 구절에서 예수는 혼인하지 않기를 권하기도 한다.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짧은 생각 :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

본 블로그에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많이 쓰이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이란 단어 대신에 성적 매력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생각하고 있는데 필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 사전적 의미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전적 의미가 실제 생활에서의 의미와 같지 않은 사실 자체를 문제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이 다른 경우가 있으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유성애자들은 상호작용 과정에서 성적 매력 자체를 느끼는 것과 사랑을 느끼는 것을 쉽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성소수자야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이니 관심을 갖고 자세히 구분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관심이 있다 할지라도 성다수자가 두 단어가 다르게 쓰임을 보고 그 상세한 정보까지 찾아내려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지나치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갖는 일이 없으면 다행일 것이다.

2. 성적 매력을 아는 것과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어떤 것을 소위 '섹시하다'고 일컫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왜 그것이 섹시한지 물어보면 답할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 섹시하다고 하는지 학습되어 섹시한 것을 아는 것이지 그것을 느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가 말하는 핵심 요소에 가깝다. (핵심 요소 그 자체는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에 다룰 일이 있을 것이다.)

3. 일반 언중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과 거리가 있다.

성소수자 관련 지식과 표현들은 대부분 수입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표현을 쓰든 어색할 수 있고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성에 대해 더 관대한 관점을 지닌 사회에서 관련 지식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꼭 성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지식들은 대부분 더 관심을 갖는 지역에서 발전했다. 그러니 단어의 기원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두 언어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와 우리말은 아주 다르다. 단어 형성 방식이나 문법 외에도 단어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그 표현들을 무분별하게 아주 단순한 해석만 거쳐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 대중의 언어와 괴리가 생기게 된다.) 이 점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정보 이해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

이성애(heterosexuality), 동성애(homosexuality), 양성애(bisexuality), 비성애(asexuality) 등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어떠한 지향성이 존재한다. 이를 우리는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이라 한다.

연애 지향의 종류

성적 지향과 비교한 연애 지향
위 그림은 성적 지향과 간단히 비교한 연애 지향이다. 실제로 이러한 분류법이 크게 통용된다. (물론 범비연애 영역에 속하는 연애 지향도 있지만 본 글에서는 그러한 분류는 일단 제외하였다.) 기준은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 "romantic attraction"이다. 편의를 위해 "romantic attraction"을 느끼는 것을 '연애 감정을 느끼고 연애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표현하도록 하겠다.

이성연애(이성낭만; heteroromanticism) : 이성인 대상에게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성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동성연애(동성낭만; homoromanticism) : 동성인 대상에게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동성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양성연애(양성낭만; biromanticism) : 양성 모두에게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양성 모두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범성연애(범성낭만; panromanticism) : 성별과 상관 없이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비연애(무낭만; aromanticism) : 그 누구에게도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고 그 누구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연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핵심은 간단하다. "저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즉, 상대를 현실에서의 연애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애 지향과 성적 지향의 관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애 지향은 성적 지향과 무관하다. 따라서 아무개의 연애 지향과 성적 지향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는 특별히 사용하여 표현하는 단어가 없지만 후자는 혼합 지향(mixed orientation sexualtiy; varioriented sexuality; 직역은 아니지만 이 표현이 그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이라 부른다. (참고) 예를 들어 아무개의 성적 지향이 동성애이지만 연애 지향은 이성연애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혼합 지향인 사람이다.

수많은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가 혼합 지향이다. 따라서 일일이 연애 지향과 성적 지향을 모두 밝힐 필요는 없고 대신 연애 지향만을 밝히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비성애자가 자신을 남성이라 정의하는데 남성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고 남성을 연애 대상으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동성연애자(homoromantic)라 표현할 것이다. 물론 혼합 지향인 성애자(유성애자; allosexual)가 반드시 자신을 혼합 지향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다.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특집]비연애(무낭만; aromanticism)

본 글은 AAW(비연애 알리기 주간; Aromantic Spectrum Awareness Week) 특집 기사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와 비연애자(aromantic)가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특별히 비성애(무성애; asexuality)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이번에는 비연애(무낭만; aromanticism)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비연애(무낭만)라 함은 "romantic attraction"을 느끼지 않는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을 일컫는다. "romantic attraction"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게 하는 매력을 말한다. (참고) 굳이 우리말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자면 '어떠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연애 지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다시 조금 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면 '누구에게도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고 누구도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연애 지향'이다.

비성애자(무성애자)라 해서 반드시 누군가에 대해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비성애자 중에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연애도 필요 없다는 사람이 있었다. (AVEN에서 이루어진 조사)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을 완전히 같게 볼 수 없었고 결국 비연애(무낭만)이라는 연애 지향을 표현하게 되었다. (참고)

더 자세한 정보를 바란다면 AVEN 포럼의 연애 지향 관련 게시판(영어)(http://www.asexuality.org/en/forum/90-romantic-and-aromantic-orientations/)을 참고하길 바란다. 혹시 한국어로 된 관련 내용을 찾고 싶다면 Rigvedawiki의 비연애자 항목에 들어가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위키위키이기에 항목의 정보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특집]비연애(Aromanticism)를 아십니까?

이번 주에는 큰 명절인 설이 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비연애 알리기 주간이기도 하다.

필자는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번 주간이 비연애를 알리기 주간을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설을 모르느니 차라리 비연애 알리기 주간을 모르고 말겠지만 필자는 설을 알기에 비연애 알리기 주간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다. (농담 섞인 궤변이다. 그냥 무시해주길 바란다.)

2015년 2월 16일부터 22일까지는 비연애 알리기 주간(Aromantic Spectrum Awareness Week; AAW)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연애 영역의 연애 지향을 알리는 주간이다. 혹시 영어로라도 정확한 정보를 원한다면 여기에 들어가 보기를 원한다. 링크된 사이트에는 범 비연애 영역(Aromantic Spectrum)에 속하는 다양한 연애 지향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물론 이 다음에 업로드가 이루어질 글에도 설명할 것이다.

비연애(비낭만, 무낭만; Aromanticism)은 한 종류의 연애 지향이다. 특별히 연애(낭만; Romanticism, 예술 관련 용어가 아님)와 대립되는 개념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연애를 추구하지 않는 경향이다. 즉, 연애가 아닌 것이다.

위 그림(출처)은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과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그림이 아닌가 싶다. 연애 지향이 언제나 성적 지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애자(유성애자; sexual)도 얼마든지 비연애자(무낭만자; aromantic)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범비연애 영역에 속하는 연애 지향은 다음과 같다

비연애(Aromantic) :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경우
반(半)연애(Demi-romantic) : 연애 감정을 느끼기 위해 특정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 경우
근(近)비연애(Gray-aromantic) : 연애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아주 한정되어 있는 경우

독자들은 필자가 이미 쓴 글, 범비성애 영역에 속하는 연애 지향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이 개념은 독자가 이미 범비성애 영역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 지식을 연애 지향으로 다시 적용하기만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아주 간단히 설명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직접 제작한 비연애 알리기 주간 포스터를 첨부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참고로 그림판으로 제작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그럼 행복한 설과 비연애 알리기 주간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