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4일 토요일

비성애(asexuality)에 대한 성경의 관점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진 사람의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의외로 꽤 많을 것이고, 또 의외로 꽤 적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20% 이상의 한국인이 종교를 가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본 글에서는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인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의 경전인 성경을 통해 비성애(무성애; asexuality)를 종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

긍정적인 관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은 비성애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사실 이것 말고 딱히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근거가 필요하므로 성경 몇 구절을 들도록 하겠다. (본 글에서는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을 인용하고 인용 위치는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성경의 것을 병기한다.)

첫번째 관점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 19, 10-12; 마 19:10-12)[1][2]
어느날 "바리사이"(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이유만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 답으로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둘을 가를 수 없다고 답하고 그 후 제자들의 반응이 위 구절이다. 많은 비성애자들이 위 구절을 비성애에 대한 옹호 발언이라고 여긴다. 위 구절에서의 "고자"와 비성애는 꽤나 다르지만 "고자"가 '욕정'을 배제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통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구절 참고)

두번째 관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 혼자 사는 이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1코린 7, 7-8; 고전 7:7-8)[1][2]
가톨릭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개신교에서는 독신의 은사라는 것을 아주 큰 은사로 생각한다.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이 바로 제시된 구절이다. 위 구절을 썼다고 알려진 사람은 사도 바오로(바울)이다. (1코린 1, 1; 고전 1:1) 실제로 바오로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 구절의 앞부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결혼을 권한다. 그 이유는 "불륜"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1코린 7, 2; 고전 7:2) 여기서 말하는 불륜은 부부가 아닌 사람들끼리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또 상호 간에 특별한 경우(신앙에 전념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관계를 거부하지 말라고 권한다. (1코린 7, 5; 고전 7:5) 하지만 위 구절에서는 다르다. 독신인 사람들에게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권한다. 대신 "욕정"에 불타고 있다면 혼인하라고 권한다. (1코린 7, 9; 고전 7:9) 이유는 위에서 기술한대로 "불륜"을 예방하기 위함일 것이다.

위 구절이 시사하는 바는 결국 성경에서 독신을 '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븐(AVEN; Asexuality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같은 비성애자 커뮤니티에서 종교(특히 기독교)적 가치관을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는 비성애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종교를 이유로 어떠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지 이전에 성경을 읽지 않은 결과 일어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음 구절은 한 술 더 뜬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약혼녀에게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열정까지 넘쳐 혼인해야 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 두 사람은 혼인하십시오. 그러나 마음속으로 뜻을 단단히 굳히고 어떠한 강요도 없이 자기의 의지를 제어할 힘이 있어서 약혼녀를 그대로 두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였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약혼녀와 혼인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혼인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1코린 7, 36-38; 고전 7:36-38)[1][2]
사실 36절의 경우 ("어떤 사람이"부터 "혼인하십시오"까지) 지금 필자가 기술하려는 내용을 기준으로 고려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 절을 포함한 것은 비성애나 성애(유성애; allosexuality)가 (특히 성애가)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담으로 빠져서 살짝 아쉽지만) 간혹 성애자(유성애자; allosexual)나 비성애자 중에 성애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위해 첨부하였다.

부정적인 관점과 그에 대한 반론

다음 내용은 철저히 비성애자의 입장에서 쓰여 내용이 빈약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부정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

첫번째 관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 27-28; 창 1:27-28)[1][2]
사람이 자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성 간 성관계이다. 또 비성애자에게서 실제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태도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성관계를 혐오(sex-repulsed; 에이븐에서 실제로 유효한 표현이다.)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죄"라 표현한다.

비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녀를 얻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임 부부는 자녀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왜 "죄"를 지었느냐고 하지 않는다. 고의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성애자도 마찬가지이다. 비성애자는 비성애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사랑과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은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3]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창세 2, 20; 창 2:20)[1][2]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 24; 창 2:24)[1][2]
위 구절들은 이성애(heterosexuality)가 아닌 경우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을 잘 보여 준다. 결국 사람은 신의 섭리에 따라 남녀가 결혼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구절들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이는 "협력자"란 표현 때문이 아니다. 이 구절들의 앞에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신의 관점에서 썩 좋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동물들은 혼자만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내용에서 신은 사람이 사회를 이루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예수는 신이다. 그 사실은 삼위일체 사상(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는 셋이면서도 하나라는 사상으로 여기서 성자는 예수를 의미한다.)에서 잘 드러난다. 제일 위로 돌아가 긍정적인 관점의 첫번째 관점에서 인용된 구절에서 예수는 혼인하지 않기를 권하기도 한다.



참고

[1]가톨릭 성경, http://info.catholic.or.kr/bible/
[2]개신교 성경, http://www.su.or.kr/03bible/daily/versionView.do?searchTy=Calendar
[3]임옥희 역, ≪무성애를 말하다≫, 서울:㈜레디셋고, 2013, p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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