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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9일 토요일

[사설]비성애(무성애)와 섹스리스

※주의: 본 글은 필자 개인만의 관점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한 칼럼을 읽게 되었다. 이 칼럼을 읽은 다른 비성애자의 관점은 소개하지 않도록 하겠다. (필자는 어떤 무성애자든 소개할 칼럼을 보고 불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칼럼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혹시 모르니 주소도 직접 붙인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4823

우선 이 글에서만큼은 비성애라는 단어 대신 무성애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 글은 칼럼에 반박하기 위해 쓰는 글임 또한 밝힌다.

1. 무성애는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필자가 이전에 쓴 글을 참고하면 무성애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성적 끌림을 감정과 연결된 성욕으로 인식하고는 있으나 이것 또한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페티시스트(fetishist)도 무성애자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극단화하긴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성적 끌림이라는 것이다.

2. 어떤 사람이 성욕저하증이라 하고 그것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DSM-V도 읽어 보았으나 그럼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 논하기에 필자는 아직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의사들끼리 하기 바란다.

3. 내담자 J씨는 일반적인 무성애자의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무성애자는 자신에 대해 "이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 첫째, 무성애라는 것을 고칠 수 있음을 시사할 수 있는 표현이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둘째, 대부분의 경우 성적 지향은 변동적이지 않다.

"이젠"이라는 표현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앞으로 변할 가능성을 포함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려져 있다시피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거부하다시피) 동성애는 고칠 수 없다. 실제로 성적 지향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나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이질적인 경우이고 치료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무성애자들은 무성애에 대해 오해할만한 표현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현재 무성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무성히 많은 오해도 많이 불러 일으키는 개념이다. 그래서 한 무성애자의 말이 악영향을 끼치기 쉽다. 이걸 국가관의 개념에 대입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입해보자면 외국인을 대할 때 우리나라의 인상을 신경쓰며 조심하는 것과 흡사하다.

4. 내담자 J씨만의 사례를 가지고 무성애를 이해하기에는 무성애가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다.

실제로 내담자 J씨가 무성애자라 할지라도 세상에는 무성애자가 아주 많고 무성애라는 것이 정말 유효한 개념인지에 대한 논의도 학술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유효한 개념이라고 결론일 날 것 같다.) 그러한 무성애를 한 사람의 경우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필자의 글도 논리적 오류로 점철되어 있기는 하다.)

5. 1983년의 연구에서 무성애자에 대해 한 조사는 정말 유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현재도 무성애라는 개념을 알지 못해 자신을 무성애자로 정체화하지 못하는 무성애자가 다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성애라는 것이 (다른 문제를 동반했든 않았든) 지배적인 문제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해 무성애자들의 단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구한 것이 과연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심지어 무성애라는 개념이 처음 제시된 게 1980년도이다.)

6. 일반적인 연애 관계에서 성관계는 중요한 요소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많은 연구에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업로드할 글에서 포함하도록 하겠다.) 성적 욕구(sexual desire)와 애정은 별개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성관계가 과연 깊은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7. 무성애자라고 해서 다 성기능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한 설명은 다시 무성애가 무엇인지로 회귀한다. 무성애는 감정적인 문제에 가까운 것이지 신체적인 문제로 인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소개한 칼럼이 성애규범적(sexual-normative) 관점에서 쓰인 것이 아닐까 싶다.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사설]왜?

본 글은 15세 미만에게 대체로 권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므로 15세 미만이 읽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개인적으로 19세 미만의 접근을 막고는 싶지만 사실 그 정도로 선정적인 이야기를 할 예정은 아니므로 참도록 하겠다. 또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 없이 약간 불쾌할 수 있는 내용이 섞여 있음을 미리 밝힌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들은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설명이 모든 비성애자들에게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someone who does not experience sexual attraction"[1]이란 비성애자의 정의를 가장 간단히 번역한 것이다.

저번에 필자가 본 한 블로그 글에는 비성애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글이 있었다. 사실 필자는 그 글을 읽고 불쾌했다. 비성애(무성애; asexuality)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글임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불쾌한 것은 불쾌한 것이다. 부정적인 의도로 언급하였으므로 굳이 링크를 걸지는 않겠다.

몇 년 전 필자는 <아가씨를 부탁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필자는 어느 한 장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2] 왜 했는지 이해는 못하겠지만 키스를 한 것도 알겠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겉옷을 벗긴 것도 알겠는데 왜 다음 화의 시작은 침대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필자는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키스, 포옹 등이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사랑이 성관계로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한 성애자(유성애자; allosexual)는 필자에게 "그건 이해하는 게 아냐. 당연히 이루어지는 거지."라고 하였지만 그것마저 필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그렇구나" 할 뿐이었다.

필자는 먼저 언급한 블로그 글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일단 이 영상을 보십시오. 당신은 이 영상에서 그 두 사람이 왜 성관계를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이해할 수 없듯 우리도 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이런 게 있는 줄 아십시오." [3]

성애자나 비성애자나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단지 비성애자는 많은 성애자들 사이에서 살고 있기에 성애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다시 성적 매력 이야기로 돌아와서 비성애자가 어떤 사람의 성적 매력이 어떤 부분인지 짚을 수 있는 것은 학습의 결과이다. 그들이 직접 성적 매력을 느껴서 아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 점을 감안하여 "성적 매력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표현하였다.) 필자가 중학교 때 미취학 아동들이 친구에게 뽀뽀를 하라고 하면 고개를 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랑 아주 흡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2015년 4월 4일 토요일

[사설]본 블로그에서 비성애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

"Asexuality"가 처음 제시된 언어는 영어이다. 영어에서 접두사 a-는 우리말에서 不, 無, 非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참고) 따라서 "무성애"란 단어 자체는 원어 asexuality를 잘 번역한 단어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성애"를 "무성애"보다 선호하므로 본 블로그에서는 "비성애"를 더 많이 사용한다. 사실 이유는 별 거 없으나 이것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일단 Asexuality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에이븐(AVEN, The Asexuality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에서는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는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참고) 여기서 말하는 성적 매력은 어떤 대상(실존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에 성적인 것이 결합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정리하면 비성애는 성관계(Sexual Intercourse)와 사랑이 철저히 분리된 것 혹은 양자가 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위 정의, 그러니까 필자가 다시 정리한 비성애의 정의(성관계와 사랑이 철저히 분리된 것 혹은 양자가 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에서 핵심은 부족하다거나 결핍되었다거나 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사랑이 성애 한 가지로만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애(형제, 자매를 향한 사랑), 모성애 내지는 부성애, 효(부모를 향한 자녀의 사랑) 등은 성애가 아니고 가족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같은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에서 성애가 아니라고 해서, 다시 말해 성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결핍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없다"는 형용사 자체는 중립적인 단어지만 "사랑이 없다"고 할 때 받는 어감은 썩 좋지 않다. 결국 부정적인 것이나 다름 없게 된다. 꼭 "부족하다"는 단어랑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물론 "부족"이란 단어는 비성애를 설명할 때 유효한 단어이다. (참고) 하지만 처음 비성애(무성애)를 접할 때 "없다"거나 "부족하다"고 한다면 받는 느낌이 부정적일 수 있고 비성애(무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많은 성애자들이 비성애에 대해서 알수록 비성애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필자는 비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성인인 척 한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또 많은 경우 소위 중2병이나 허세를 부린다고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있어 보인다고 비성애자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부정적인 어감을 가질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오해를 더 키우고 싶지 않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런 이유로 "무성애"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무성애"란 단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주장하는 "아니다"는 표현은 과연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솔직히 대답하면 아니다. "아니다"는 "다름" 혹은 "차이"를 의미로 내포할 수 있다. (참고)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차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그 사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고 세상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사랑하지 않는다(아니하다; 아니다 + 하다)"고 하면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고 "싫어한다"는 느낌까지 함께 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경우에 "나는 네가 아니"라는 명제는 자명하다.

요약하면 어감 때문에 필자는 차라리 "비성애"란 표현을 "무성애" 대신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본 블로그에서는 그러한 판단을 따르고 있다.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짧은 생각 :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

본 블로그에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많이 쓰이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이란 단어 대신에 성적 매력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생각하고 있는데 필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 사전적 의미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전적 의미가 실제 생활에서의 의미와 같지 않은 사실 자체를 문제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이 다른 경우가 있으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유성애자들은 상호작용 과정에서 성적 매력 자체를 느끼는 것과 사랑을 느끼는 것을 쉽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성소수자야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이니 관심을 갖고 자세히 구분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관심이 있다 할지라도 성다수자가 두 단어가 다르게 쓰임을 보고 그 상세한 정보까지 찾아내려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지나치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갖는 일이 없으면 다행일 것이다.

2. 성적 매력을 아는 것과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어떤 것을 소위 '섹시하다'고 일컫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왜 그것이 섹시한지 물어보면 답할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 섹시하다고 하는지 학습되어 섹시한 것을 아는 것이지 그것을 느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가 말하는 핵심 요소에 가깝다. (핵심 요소 그 자체는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에 다룰 일이 있을 것이다.)

3. 일반 언중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과 거리가 있다.

성소수자 관련 지식과 표현들은 대부분 수입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표현을 쓰든 어색할 수 있고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성에 대해 더 관대한 관점을 지닌 사회에서 관련 지식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꼭 성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지식들은 대부분 더 관심을 갖는 지역에서 발전했다. 그러니 단어의 기원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두 언어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와 우리말은 아주 다르다. 단어 형성 방식이나 문법 외에도 단어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그 표현들을 무분별하게 아주 단순한 해석만 거쳐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 대중의 언어와 괴리가 생기게 된다.) 이 점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정보 이해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