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4일 토요일

[사설]본 블로그에서 비성애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

"Asexuality"가 처음 제시된 언어는 영어이다. 영어에서 접두사 a-는 우리말에서 不, 無, 非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참고) 따라서 "무성애"란 단어 자체는 원어 asexuality를 잘 번역한 단어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성애"를 "무성애"보다 선호하므로 본 블로그에서는 "비성애"를 더 많이 사용한다. 사실 이유는 별 거 없으나 이것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일단 Asexuality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에이븐(AVEN, The Asexuality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에서는 비성애자(무성애자; Asexual)는 성적 매력(성적 끌림; sexual attraction)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참고) 여기서 말하는 성적 매력은 어떤 대상(실존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에 성적인 것이 결합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정리하면 비성애는 성관계(Sexual Intercourse)와 사랑이 철저히 분리된 것 혹은 양자가 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위 정의, 그러니까 필자가 다시 정리한 비성애의 정의(성관계와 사랑이 철저히 분리된 것 혹은 양자가 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에서 핵심은 부족하다거나 결핍되었다거나 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사랑이 성애 한 가지로만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애(형제, 자매를 향한 사랑), 모성애 내지는 부성애, 효(부모를 향한 자녀의 사랑) 등은 성애가 아니고 가족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같은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에서 성애가 아니라고 해서, 다시 말해 성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결핍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없다"는 형용사 자체는 중립적인 단어지만 "사랑이 없다"고 할 때 받는 어감은 썩 좋지 않다. 결국 부정적인 것이나 다름 없게 된다. 꼭 "부족하다"는 단어랑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물론 "부족"이란 단어는 비성애를 설명할 때 유효한 단어이다. (참고) 하지만 처음 비성애(무성애)를 접할 때 "없다"거나 "부족하다"고 한다면 받는 느낌이 부정적일 수 있고 비성애(무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많은 성애자들이 비성애에 대해서 알수록 비성애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필자는 비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성인인 척 한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또 많은 경우 소위 중2병이나 허세를 부린다고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있어 보인다고 비성애자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부정적인 어감을 가질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오해를 더 키우고 싶지 않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런 이유로 "무성애"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무성애"란 단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주장하는 "아니다"는 표현은 과연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솔직히 대답하면 아니다. "아니다"는 "다름" 혹은 "차이"를 의미로 내포할 수 있다. (참고)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차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그 사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고 세상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사랑하지 않는다(아니하다; 아니다 + 하다)"고 하면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고 "싫어한다"는 느낌까지 함께 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경우에 "나는 네가 아니"라는 명제는 자명하다.

요약하면 어감 때문에 필자는 차라리 "비성애"란 표현을 "무성애" 대신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본 블로그에서는 그러한 판단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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